2024. 8 희생제의와 봉헌물, 죽음과 삶을 가로지르는 의례의 시간 (최화선)

희생제의와 봉헌물, 죽음과 삶을 가로지르는 의례의 시간: 이민하, 《삶의 뒤집힌 안쪽》과 《폭격의 자장가》

최화선 (종교학자)

세상의 여러 곳에서 일어났던 비극과 아픔의 기억들, 그러한 기억들을 종교적 의례의 언어들을 참조하며 소환해왔던 이민하 작가가 임신과 출산에 주목하면서 이를 둘러싼 불안, 고통, 두려움에 주목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민하 작가의 2023년 두 개인전, 《삶의 뒤집힌 안쪽》 (2023. 10.6-10.15, 아트플러그 연수)과 《폭격의 자장가》 (2023. 11.21-2024. 1. 13 수림큐브)는 여성이 겪는 임신과 출산은 세상의 모든 폭력과 고통, 삶의 불안과 동요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환기시키며 시작된다. 2채널 영상 <허물, 체액, 범람> 속 여성들은 임신, 출산과 관련된 어려움과 아픔을 말하며, 설치작품 <폭격의 자장가>의 언뜻 포근해 보이는 게르와도 같은 따뜻한 공간- 당연하게도 자궁을 연상시키는 공간은 곧 공간 전체를 뒤흔드는 강렬한 포격음으로 동요한다. <피부의 북>은 언뜻 보기엔 웅크리고 있는 귀여운 아기 같지만,  가까이 가서 이것이 돼지생가죽을 덮은 북임을 알게 되는 순간 동물가죽, 살가죽과 관련된 여러 신화적 이미지들이 겹쳐지며 이 아기 형상이 숭배를 위한 것인지 희생제의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게 만든다.

종교학자 낸시 제이(Nancy Jay)는 희생제의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이 행하는 유사 출산 의례라 생각했다. 여성들처럼 실제로 아이와 육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남성들이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에서 아이(좀더 정확히는 아들)로 이어지는 사회적 종교적 계보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문화적 출산 의례가 희생제의라는 것이다. 출산과 희생제의 모두에서 피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허물, 체액, 범람> 속 붉은 카펫, 퍼져나가는 붉은 색 염료, 《삶의 뒤집힌 안쪽》의 오브제가 놓인 세 개의 붉은 원형 좌대는 피의 이미지를 통해 출산 의례가 지니는 희생제의와의 묘한 연관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민하의 전시장은 출산 이면의, 희생제의의 폭력성만을 상기시키지 않는다. 《삶의 뒤집힌 안쪽》 벽에 걸린 푸른 옷과 향료는 스스로 의례의 집전자가 되었던 작가가 영상 <허물, 체액, 범람>에서 입고 들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상징하는 붉은 색과 대비되는 성모의 푸른색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푸른색은 이 전시가 피의 희생제의에만 주목하기 보다는, 희생제의를 가로질러 앞으로 걸어나가는 소망과 기원을 어딘가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상의 시작과 끝 작가는 향료를 들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보를 이어가기 위해 흘리는 피와 폭력의 되물림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자를, 또다른 생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쓰다듬어주는 몸짓이다.

그러기에 이 곳은 죽음과 삶, 아픔과 치유,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의례의 장이다. 붉은 좌대 위에 누워있는 붉은 옻칠의 아기 둘레에는 귀와 코 모형이 가득 펼쳐져 있다. 이 귀와 코 모형이 임진왜란 당시 살해당한 조선인들의 귀와 코가 묻혀있는 일본의 귀무덤을 연상시키는 순간 이들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끈질기게 반복된 폭력과 잔인함의 일면을 상기시키고, 그러기에 그 한 가운데 누워있는 어린 아이는 희생제의에 바쳐진 제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귀와 코 모형은 동시에 고대 세계로부터 신에게 감사와 기원을 담아 제작하던 신체 부위 모형 봉헌물- 엑스-보토(ex-voto)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라틴어 “ex voto suscepto” (“바쳐진/약속된 서약에 따라서”)라는 문구로부터 기인한 엑스-보토는 가톨릭 교회의 봉헌물을 뜻하는 말로 주로 사용되지만, 그 양상이나 기원은 그리스도교 이전으로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고대 그리스 및 에트루리아 전통에서 두드러지는 엑스-보토 봉헌물의 한 양상은 신체 부위 모형이다. 다리, 손, 팔, 눈, 코, 심지어 자궁 등 인체 내부의 장기의 모형을 한 이 봉헌물들은 아마도 봉헌자의 환부를 상징하는 징후적 사물이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고대의 관습을 이교적이라 비난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봉헌물 엑스-보토 전통 속에 흡수시킨다. 15세기 16세기 피렌체 교회에서는 밀랍으로 만든 이러한 신체 부위 모형 봉헌물이 가득한 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오늘날에도 브라질 노소 세뇨르 두 본핌 교회의 ‘기적의 방’ 천장에는 감사와 기원의 뜻을 담은 팔 다리 모형 봉헌물이 가득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붉은 좌대 위에 널린 귀와 코 모형은 치유와 기적을 지시하는 징후적 봉헌물이며, 누워있는 아기 형상은 제물이 아닌, 축복과 기적의 대상이다. 이민하의 전시장 속 긴장감은 희생제의의 제물이 죽음을 가로질러 치유와 기적,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고 닦으며 만들어가는 작가의/여성들의 노고로 이뤄진다.

작가가 아기 모형 오브제를 제작하며 3D 프린팅 위에 여름 내 옻칠 작업을 한 과정은 작가의 노트에 잘 나타나있다. 특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만 하는 옻칠 작업장의 환경, “한 개의 레이어가 건조되는데 최소 2-3일이 필요로 하고, 그런 레이어를 20개 이상 쌓아서 갈아내어 밑색을 드러내는” 이렇게 품이 많이 들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다가 온몸이 옻독이 오를 위험까지 감내해야 하는 작업 방식을 작가가 택한 것은 분명 의도적인 것일테다. 수많은 시간과 어려움, 자기 희생의 가능성까지 감내해가면서도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예술은 종교적 수행과도 닮았고, 또한 아기를 낳고 키워가는 과정과도 닮았다. 그러기에 작가의 지난한 노력이 담긴 옻칠한 아기 형상 오브제들이 묘하게도 불상의 느낌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기 형상 오브제들은 그 자체의 형상으로도 점차 커가는 아이의 모습으로 변하며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옻칠 작업이라는 작가가 선택한 제작 방식 자체가 그러한 긴 시간과 그 속에 담긴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재료와 제작과정을 통해 구체화하고자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종교적 의례가 보이지 않는 것들, 보이지 않는 시간, 긴 시간의 흐름을 어떠한 구체적 물질과 재료, 제작과정을 통해 가시화하고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매우 종교적이고 또한 의례적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오브제만 보았을 때는 동물 가죽과 관련된 희생제의를 연상시켰던 <피부의 북> 역시, 영상 작업 <허물, 체액, 범람> 속에서 직접 작가의 바느질을 통해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획득하게 된다.  임신과 관련된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서로의 손목을 잡고 눌러주는 여성들 옆에서 작가는 한 땀 한 땀 동물 살가죽을 바느질하여 악기를 만든다. 동물의 살가죽으로 악기를 만드는 모습은 언뜻 마르시아스 신화와 같은 잔인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만, 영상 속 여성들이 서로의 살을, 몸을 악기 삼아 연주하듯 눌러주는 모습과 병치될 때, 이러한 악기 만들기는 잔혹한 현실을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삶을 이어가려는 노력으로 승화된다.

티벳 불교의 모래 만다라 의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무상하고 비영속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계속 삶을 긍정하고 살아나가게 하는 힘을 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열심히 쌓고 만든 것들을 결국 모두 없애버리는 이 의례에서 핵심은 단지 모든 것이 무상함을 말해주는 마지막 파괴에만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명확한 지도나 계획 없이도 그저 함께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고 작업하는 과정에 있다. 작가의 각설탕 만다라 작업에서도 설탕이 상징하는 달콤함과 유혹, 허망함을 그저 마지막에 뜨거운 물로 부어 없애버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각설탕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들에 초점을 맞춘 영상은, 개미들의 움직임이 상징하는, 무한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고된 삶의 시간들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만다라를 만들고, 악기를 만들고, 귀와 코 모양의 신체 부위 봉헌물을 만들고, 그리고 봉헌물들에 손을 얹어 기원의 바치는 손짓들을 함께 생각해보게 한다, 바로 그러한 노력과 시간들, 몸짓들이야말로 살을 찢는 아픔과 울부짖음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 긍정하고 걸어나가는 순간들을 만들어나가는 힘이라는 보여준다.

신화를 바꾸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의례를 조금씩 바꾸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새로운 신화를 써나가길 원한다. 탈가부장적 종교를 모색하는 여성신학자들이 의례적 실천에 먼저 주목한 것도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 온 가부장제의 신화/신학을 의례적 실천들을 통해 변화시키려는 의도였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둘러싼 모성의 신화를 바꿔가는 과정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신비화하고 미화하는 신화의 ‘뒤집힌 안쪽’을 보여주는 이민하 작가의 전시는, ‘폭격의 자장가’가 울리는 불안과 동요, 잔인한 현실을 가로지르며,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고 닦으며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노력만이, 그들의 의례와도 같은 매순간의 몸짓들만이 이 오래된 신화를 바꾸고 ‘새로운 신화’를 써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기에 작가는 “불신을 넘어서는 수행의 힘”을 믿는 자이며, 이러한 믿음은 전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또다른 의례적 행위를 통해 계속 퍼져나갈 것이다.

2024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