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현실과 수직적 비상에의 꿈
이민하 전 2007.3.7~3.13 갤러리 토포하우스
이민하의 작품을 보며 처음 떠오른 것은 이상의 ‘날개’라는 소설의 한 구절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구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구나.” 날개가 돋기 위해 겨드랑이가 자주 가렵다던 한 패배주의자의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순간. 그러나 그것이 죽음이 아닌 저자의 이름답게 ‘이상’을 향해서 다가가는 발걸음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날개는 신의 영역이 되기도 하고 ‘비상’을 꿈꾸며 이상을 찾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매개체라 여긴다. 작가의 작품에서 역시 거대하게 퍼져가는 날개는 소설에서의 주인공처럼 죽음과 이상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가늘고 얽힌 필선, 손의 노동이 집약된 화면이 공간 속에서 부유하며 2차원의 평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3차원의 공간으로 튀어나와 몸에 들어붙어 비상할 수 있게 해줄 것 같다. 그리고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움직이며, 120도밖에 보지 못하는 시야를 넘어서는 존재는 위압감과 공포감까지 불러일으킨다.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기에 앞서 검은 거대함은 우리의 눈을 속이고 경건하게, 숭고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작용한 것이다. 또한 엉킨 검은 실타래는 빛을 흡수하는 블랙홀처럼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때문에 그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렵다.
그러나 꼼꼼히 짚어보면 날개 안에 펼쳐진 선의 겹침은 산맥과도 같고, 물의 형상으로도 보인다. 하여 <자연으로의 귀의에 의한 쾌>라는 작품에서 날개 속에 송대 화가 범관의 <계산 행려도>를 모사함으로써 이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작가노트에 의하면 옛 선배들이 그림 속에서 ‘휴’를 얻었듯 자연을 가까이 두고자 하는 마음을 날개에 빗대어 표현하고 그 안에서 평안을 찾는다고 한다. 이러한 사고는 그가 설치회화라고 말하는 부분과 맞닿아 있다. 거대한 화면이 보여주는 공간의 적극적 개입은 자연 속에 관자의 정신이 흡수되었던 것이 아닌, 아예 화면 자체가 밖으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는 저 멀리 숨어있는 감정의 꼬투리를 잡게 된다.
서정임 기자, 월간 퍼블릭 아트 2007년 4월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