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wfw="http://wellformedweb.org/CommentAPI/"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xmlns:sy="http://purl.org/rss/1.0/modules/syndication/"
	xmlns:slash="http://purl.org/rss/1.0/modules/slash/"
	>

<channel>
	<title>Minha LEE &#187; 출산의례</title>
	<atom:link href="http://leeminha.com/?feed=rss2&#038;tag=%EC%B6%9C%EC%82%B0%EC%9D%98%EB%A1%80"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
	<link>http://leeminha.com</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stBuildDate>Sat, 07 Mar 2026 13:57:16 +0000</lastBuildDate>
	<language>en-US</language>
		<sy:updatePeriod>hourly</sy:updatePeriod>
		<sy:updateFrequency>1</sy:updateFrequency>
	
	<item>
		<title>2024. 8 희생제의와 봉헌물, 죽음과 삶을 가로지르는 의례의 시간 (최화선)</title>
		<link>http://leeminha.com/?p=1509</link>
		<comments>http://leeminha.com/?p=1509#comments</comments>
		<pubDate>Fri, 06 Mar 2026 02:32:54 +0000</pubDate>
		<dc:creator><![CDATA[leeminha]]></dc:creator>
				<category><![CDATA[Text-Kr]]></category>
		<category><![CDATA[엑스보토]]></category>
		<category><![CDATA[의생제의]]></category>
		<category><![CDATA[이민하]]></category>
		<category><![CDATA[최화선]]></category>
		<category><![CDATA[출산의례]]></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leeminha.com/?p=1509</guid>
		<description><![CDATA[희생제의와 봉헌물, 죽음과 삶을 가로지르는 의례의 시간: 이민하, 《삶의 뒤집힌 안쪽》과 《폭격의 자장가》 최화선 (종교학자) 세상의 여러 곳에서 일어났던 비극과 아픔의 기억들, 그러한 기억들을 종교적 의례의 언어들을 참조하며 소환해왔던 이민하 작가가 임신과 출산에 주목하면서 이를 둘러싼 불안, 고통, 두려움에 주목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민하 작가의 2023년 두 개인전, 《삶의 뒤집힌 안쪽》 (2023. 10.6-10.15,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희생제의와 봉헌물, 죽음과 삶을 가로지르는 의례의 시간: 이민하, 《삶의 뒤집힌 안쪽》과 《폭격의 자장가》</p>
<p>최화선 (종교학자)</p>
<p>세상의 여러 곳에서 일어났던 비극과 아픔의 기억들, 그러한 기억들을 종교적 의례의 언어들을 참조하며 소환해왔던 이민하 작가가 임신과 출산에 주목하면서 이를 둘러싼 불안, 고통, 두려움에 주목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민하 작가의 2023년 두 개인전, 《삶의 뒤집힌 안쪽》 (2023. 10.6-10.15, 아트플러그 연수)과 《폭격의 자장가》 (2023. 11.21-2024. 1. 13 수림큐브)는 여성이 겪는 임신과 출산은 세상의 모든 폭력과 고통, 삶의 불안과 동요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환기시키며 시작된다. 2채널 영상 &lt;허물, 체액, 범람&gt; 속 여성들은 임신, 출산과 관련된 어려움과 아픔을 말하며, 설치작품 &lt;폭격의 자장가&gt;의 언뜻 포근해 보이는 게르와도 같은 따뜻한 공간- 당연하게도 자궁을 연상시키는 공간은 곧 공간 전체를 뒤흔드는 강렬한 포격음으로 동요한다. &lt;피부의 북&gt;은 언뜻 보기엔 웅크리고 있는 귀여운 아기 같지만,  가까이 가서 이것이 돼지생가죽을 덮은 북임을 알게 되는 순간 동물가죽, 살가죽과 관련된 여러 신화적 이미지들이 겹쳐지며 이 아기 형상이 숭배를 위한 것인지 희생제의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게 만든다.</p>
<p>종교학자 낸시 제이(Nancy Jay)는 희생제의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이 행하는 유사 출산 의례라 생각했다. 여성들처럼 실제로 아이와 육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남성들이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에서 아이(좀더 정확히는 아들)로 이어지는 사회적 종교적 계보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문화적 출산 의례가 희생제의라는 것이다. 출산과 희생제의 모두에서 피의 이미지가 지배적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lt;허물, 체액, 범람&gt; 속 붉은 카펫, 퍼져나가는 붉은 색 염료, 《삶의 뒤집힌 안쪽》의 오브제가 놓인 세 개의 붉은 원형 좌대는 피의 이미지를 통해 출산 의례가 지니는 희생제의와의 묘한 연관성을 떠올리게 만든다.</p>
<p>그러나 이민하의 전시장은 출산 이면의, 희생제의의 폭력성만을 상기시키지 않는다. 《삶의 뒤집힌 안쪽》 벽에 걸린 푸른 옷과 향료는 스스로 의례의 집전자가 되었던 작가가 영상 &lt;허물, 체액, 범람&gt;에서 입고 들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상징하는 붉은 색과 대비되는 성모의 푸른색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푸른색은 이 전시가 피의 희생제의에만 주목하기 보다는, 희생제의를 가로질러 앞으로 걸어나가는 소망과 기원을 어딘가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상의 시작과 끝 작가는 향료를 들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보를 이어가기 위해 흘리는 피와 폭력의 되물림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자를, 또다른 생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쓰다듬어주는 몸짓이다.</p>
<p>그러기에 이 곳은 죽음과 삶, 아픔과 치유,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의례의 장이다. 붉은 좌대 위에 누워있는 붉은 옻칠의 아기 둘레에는 귀와 코 모형이 가득 펼쳐져 있다. 이 귀와 코 모형이 임진왜란 당시 살해당한 조선인들의 귀와 코가 묻혀있는 일본의 귀무덤을 연상시키는 순간 이들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끈질기게 반복된 폭력과 잔인함의 일면을 상기시키고, 그러기에 그 한 가운데 누워있는 어린 아이는 희생제의에 바쳐진 제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귀와 코 모형은 동시에 고대 세계로부터 신에게 감사와 기원을 담아 제작하던 신체 부위 모형 봉헌물- 엑스-보토(ex-voto)를 연상시키기도 한다.</p>
<p>라틴어 “ex voto suscepto” (“바쳐진/약속된 서약에 따라서”)라는 문구로부터 기인한 엑스-보토는 가톨릭 교회의 봉헌물을 뜻하는 말로 주로 사용되지만, 그 양상이나 기원은 그리스도교 이전으로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고대 그리스 및 에트루리아 전통에서 두드러지는 엑스-보토 봉헌물의 한 양상은 신체 부위 모형이다. 다리, 손, 팔, 눈, 코, 심지어 자궁 등 인체 내부의 장기의 모형을 한 이 봉헌물들은 아마도 봉헌자의 환부를 상징하는 징후적 사물이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고대의 관습을 이교적이라 비난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봉헌물 엑스-보토 전통 속에 흡수시킨다. 15세기 16세기 피렌체 교회에서는 밀랍으로 만든 이러한 신체 부위 모형 봉헌물이 가득한 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오늘날에도 브라질 노소 세뇨르 두 본핌 교회의 ‘기적의 방’ 천장에는 감사와 기원의 뜻을 담은 팔 다리 모형 봉헌물이 가득하다.</p>
<p>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붉은 좌대 위에 널린 귀와 코 모형은 치유와 기적을 지시하는 징후적 봉헌물이며, 누워있는 아기 형상은 제물이 아닌, 축복과 기적의 대상이다. 이민하의 전시장 속 긴장감은 희생제의의 제물이 죽음을 가로질러 치유와 기적,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고 닦으며 만들어가는 작가의/여성들의 노고로 이뤄진다.</p>
<p>작가가 아기 모형 오브제를 제작하며 3D 프린팅 위에 여름 내 옻칠 작업을 한 과정은 작가의 노트에 잘 나타나있다. 특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만 하는 옻칠 작업장의 환경, “한 개의 레이어가 건조되는데 최소 2-3일이 필요로 하고, 그런 레이어를 20개 이상 쌓아서 갈아내어 밑색을 드러내는” 이렇게 품이 많이 들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다가 온몸이 옻독이 오를 위험까지 감내해야 하는 작업 방식을 작가가 택한 것은 분명 의도적인 것일테다. 수많은 시간과 어려움, 자기 희생의 가능성까지 감내해가면서도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예술은 종교적 수행과도 닮았고, 또한 아기를 낳고 키워가는 과정과도 닮았다. 그러기에 작가의 지난한 노력이 담긴 옻칠한 아기 형상 오브제들이 묘하게도 불상의 느낌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기 형상 오브제들은 그 자체의 형상으로도 점차 커가는 아이의 모습으로 변하며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지만, 옻칠 작업이라는 작가가 선택한 제작 방식 자체가 그러한 긴 시간과 그 속에 담긴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재료와 제작과정을 통해 구체화하고자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종교적 의례가 보이지 않는 것들, 보이지 않는 시간, 긴 시간의 흐름을 어떠한 구체적 물질과 재료, 제작과정을 통해 가시화하고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매우 종교적이고 또한 의례적이다.</p>
<p>비슷한 맥락에서, 오브제만 보았을 때는 동물 가죽과 관련된 희생제의를 연상시켰던 &lt;피부의 북&gt; 역시, 영상 작업 &lt;허물, 체액, 범람&gt; 속에서 직접 작가의 바느질을 통해 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획득하게 된다.  임신과 관련된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서로의 손목을 잡고 눌러주는 여성들 옆에서 작가는 한 땀 한 땀 동물 살가죽을 바느질하여 악기를 만든다. 동물의 살가죽으로 악기를 만드는 모습은 언뜻 마르시아스 신화와 같은 잔인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만, 영상 속 여성들이 서로의 살을, 몸을 악기 삼아 연주하듯 눌러주는 모습과 병치될 때, 이러한 악기 만들기는 잔혹한 현실을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삶을 이어가려는 노력으로 승화된다.</p>
<p>티벳 불교의 모래 만다라 의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무상하고 비영속적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계속 삶을 긍정하고 살아나가게 하는 힘을 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열심히 쌓고 만든 것들을 결국 모두 없애버리는 이 의례에서 핵심은 단지 모든 것이 무상함을 말해주는 마지막 파괴에만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명확한 지도나 계획 없이도 그저 함께 무엇인가를 계속 만들고 작업하는 과정에 있다. 작가의 각설탕 만다라 작업에서도 설탕이 상징하는 달콤함과 유혹, 허망함을 그저 마지막에 뜨거운 물로 부어 없애버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각설탕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들에 초점을 맞춘 영상은, 개미들의 움직임이 상징하는, 무한처럼 느껴지는 우리의 고된 삶의 시간들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만다라를 만들고, 악기를 만들고, 귀와 코 모양의 신체 부위 봉헌물을 만들고, 그리고 봉헌물들에 손을 얹어 기원의 바치는 손짓들을 함께 생각해보게 한다, 바로 그러한 노력과 시간들, 몸짓들이야말로 살을 찢는 아픔과 울부짖음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 긍정하고 걸어나가는 순간들을 만들어나가는 힘이라는 보여준다.</p>
<p>신화를 바꾸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의례를 조금씩 바꾸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새로운 신화를 써나가길 원한다. 탈가부장적 종교를 모색하는 여성신학자들이 의례적 실천에 먼저 주목한 것도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 온 가부장제의 신화/신학을 의례적 실천들을 통해 변화시키려는 의도였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둘러싼 모성의 신화를 바꿔가는 과정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신비화하고 미화하는 신화의 ‘뒤집힌 안쪽’을 보여주는 이민하 작가의 전시는, ‘폭격의 자장가’가 울리는 불안과 동요, 잔인한 현실을 가로지르며,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고 닦으며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노력만이, 그들의 의례와도 같은 매순간의 몸짓들만이 이 오래된 신화를 바꾸고 ‘새로운 신화’를 써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기에 작가는 “불신을 넘어서는 수행의 힘”을 믿는 자이며, 이러한 믿음은 전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또다른 의례적 행위를 통해 계속 퍼져나갈 것이다.</p>
<p>2024년 8월</p>
<p>&nbsp;</p>
<p>&nbsp;</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leeminha.com/?feed=rss2&#038;p=1509</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item>
		<item>
		<title>2021. 6 이민하: 학살과 출산 사이 (양지윤)</title>
		<link>http://leeminha.com/?p=1455</link>
		<comments>http://leeminha.com/?p=1455#comments</comments>
		<pubDate>Thu, 31 Mar 2022 08:35:36 +0000</pubDate>
		<dc:creator><![CDATA[leeminha]]></dc:creator>
				<category><![CDATA[Text-Kr]]></category>
		<category><![CDATA[Artcritic]]></category>
		<category><![CDATA[Artist_Minha]]></category>
		<category><![CDATA[Contemporary Art]]></category>
		<category><![CDATA[Jiyoon Yang]]></category>
		<category><![CDATA[leeminha]]></category>
		<category><![CDATA[Minha Lee]]></category>
		<category><![CDATA[Passages]]></category>
		<category><![CDATA[Triple point]]></category>
		<category><![CDATA[videoart]]></category>
		<category><![CDATA[그을린세계]]></category>
		<category><![CDATA[미술비평]]></category>
		<category><![CDATA[삼중점]]></category>
		<category><![CDATA[양지윤]]></category>
		<category><![CDATA[이민하]]></category>
		<category><![CDATA[출산의례]]></category>
		<category><![CDATA[학살]]></category>
		<category><![CDATA[현대미술]]></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leeminha.com/?p=1455</guid>
		<description><![CDATA[이민하: 학살과 출산 사이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글로벌화된 현대미술계에서, 대안적 세계사 또는 지역사를 담아내는 예술가의 시선은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아왔다. ‘세계사’라고 불리는 거대 서사에서 벗어난 예술가 개인들의 역사 해석과 기록은 예술가가 취할 수 있는 자유의 상징이자 예술의 사회적 역할의 일환이다. 대규모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문화 산업 사회에서, 사투리의 질감과 뉘앙스가 갖는 특유의 아름다움처럼 예술은 기능하곤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align="center"><b>이민하</b><b>: </b><b>학살과 출산 사이</b><b></b></p>
<p align="right">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p>
<p align="left">   글로벌화된 현대미술계에서, 대안적 세계사 또는 지역사를 담아내는 예술가의 시선은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아왔다. ‘세계사’라고 불리는 거대 서사에서 벗어난 예술가 개인들의 역사 해석과 기록은 예술가가 취할 수 있는 자유의 상징이자 예술의 사회적 역할의 일환이다. 대규모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문화 산업 사회에서, 사투리의 질감과 뉘앙스가 갖는 특유의 아름다움처럼 예술은 기능하곤 했다.</p>
<p align="left">   이민하의 &lt;그을린 세계&gt; (2018-2019)에는 대형 크기의 소가죽이 세계 지도로 잘려져 벽을 메우고 있다. 세계적인 대학살이 있었던 지역의 좌표 64곳를 찾아가 인두로 낙인을 하나씩 찍어 내린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있었던 남아프리카, 나치즘이 있었던 독일 등 인종 차별과 종교 분쟁, 인간의 잔혹함의 역사가 있었던 곳에 짧은 문구가 가죽을 태우며 새겨진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키리에 엘레이손 기도문이 곳곳에서 타들어간다.</p>
<p align="left">   작가의 이전 작업에도 인두질한 가죽은 주요한 소재로 등장했다. 인두질한 가죽은 노예에게 낙인을 찍던 과거의 관습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그 관습 자체가 ‘배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가죽에 대한 관심의 시작은 2008년 5월의 광우병 촛불집회였다. 작가는, 광우병의 원인이 가축 부산물들을 사료에 섞어서 먹이면서 발생한 유전자 변형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시장의 효율성만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자연의 변이였던 것이다. 관객은 가죽이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시스템에 의해 죽어갔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을 떠올린다.</p>
<p align="left">   이는 ‘여성적 예술’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작가만의 대응이 된다. 백인과 유색인, 인간과 비인간, 여성과 남성 같은 이분법적 구분이,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구체화한 현실임을 드러낸다. 차별에서 출발한 이데올로기는 결국 모두를 파국으로 치닫았다. 이민하는 분석적 시선으로 시스템을 조망하며, 거북한 역사적 진실들을 꿰어 맞춘다.</p>
<p align="left">   신작 &lt;Passages&gt;는 이민하 작가가 임신 8개월이던 당시 촬영한 퍼포먼스 영상이다. 4명의 퍼포머는 가부장제 시스템 속 제 가족과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성소수자임을 숨겨야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레즈비언, 한국인 아내의 임신을 원하지 않았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젊은 남성. 자신의 이야기를 먹으로 써 내려가고, 작가의 배에 패턴을 그린다. 그리고 작가는 글을 씻어 내린 물을 마신다. 고대의 출산 자세를 한 작가의 얼굴에 우유가 부어진다. 그리고 5명은 돼지 껍데기로 만든 얇은 가죽 속으로 웅크리고 들어가듯 기어들어가, 새로운 연대, 또다른 가족이 만들어진다.</p>
<p align="left">   1983년 바버라 크루거는 나뭇잎으로 눈을 가린 젊은 여성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흑백 사진 위에 &lt;우리는 당신의 문화에 대해 자연의 역할을 하지 않겠다 We won’t play nature to your culture&gt;라고 적는다. 작가는 남성 대 여성의 대립, 자연 대 문화의 대립과 같은 문화적 형태들을 구조화하는 이항 대립을 전면화했다. 이는 근대 세계의 형성과 관계 맺고 있는 서유럽 세계관과 근대 과학의 형성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p>
<p align="left">   2021년 이민하의 임신한 예술가의 몸을 주제로 하는 작업 &lt;Passages&gt;는 이러한 이항 대립 다음의 질문을 한다. 사실 출산은 페미니즘 연구에서 불편한 주제였다. 1970년대 이래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여성을 생물학적 성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새로운 존재로 만들기 위해, 무수히 많은 연구와 사회적 투쟁을 했다. 이때 출산은 여성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근원적으로 상징하는 주제이기에,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lt;Passages&gt;는 출산을 둘러싼 인류학적 의식들을 연구하면서 제작되었다. 생물학적인 것으로만 여겨졌던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이, 가부장제 속 다양한 사회적 의식으로 여성을 가치 매김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p>
<p align="left">   미투운동으로 새로운 지평을 만난 한국의 페미니즘 예술은, 남성과 여성의 대립에 집중하던 과거를 넘어서 인간해방이라는 보편적 지평으로 담론이 확장되어가는 중이다. 페미니즘 예술이 자연 속의 인간이라는 관점까지 확대되어가는 흐름 안에서, 이민하의 작업은 새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한국 여성 예술가가 국제적인 학살 지역에 관한 예술 작업을 만들 때, 그의 관점은 어떤 특수성을 가질 수 있는가. 게이와 이주노동자와 함께 자신의 출산을 기록한 예술가의 퍼포먼스는 가부장제 시스템에 어떠한 대응을 만드는 예술 행위인가. 현재 진행형인 이 질문은, 현대 미술사의 순간들과 함께 또 하나의 특정한 기록으로 남는다.</p>
<p align="right">(2021년 6월에 진행한 그룹전 ‘삼중점’ 도록에서 발췌)</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leeminha.com/?feed=rss2&#038;p=1455</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item>
	</channel>
</rss>
